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 (문단 편집) === 망명 생활 === 1913년에 요르요스 1세가 총에 맞아서 암살당했다. 큰 충격을 받은 올가는 러시아로 돌아갔다. 파블로프스크 궁전에서 군인들을 돌보던 중에 [[제1차 세계대전]]과 [[러시아 혁명]]을 거치면서 [[로마노프 왕조]]의 많은 친척들이 전사하거나 살해당했고[* 특히 올가의 첫째 남동생 콘스탄틴의 자녀들이 많이 죽었다.] 올가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. 한편 올가의 장남 [[콘스탄티노스 1세]]는 총리대신 [[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]]의 압력에 아들 [[알렉산드로스(그리스)|알렉산드로스]]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망명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있었다. 올가는 아들 가족들과 합류해 함께 [[스위스]]로 망명했다. [*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에 의해 사실상 억류되어 있다가 덴마크의 도움으로 1919년 초 겨우 러시아를 떠날수 있었다.] 1920년에 올가와 가족들은 그리스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받았다. 알렉산드로스가 [[패혈증]]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.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망명 중인 왕족들이 돌아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. 오직 그리스에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올가만이 입국 허가를 받았다. 올가가 그리스에 도착했을 때 알렉산드로스는 이미 사망했고, 국민투표로 재즉위하게 된 콘스탄티노스 1세가 돌아올 때까지 약 한 달 동안 [[섭정]]을 맡았다. 그러나 1922년에 콘스탄티노스 1세는 [[튀르키예 독립전쟁]]에서 그리스 패전의 책임을 지고 다시 왕위에서 물러나 망명길에 올랐다. 올가는 아들과 함께 유럽을 떠돌다가 1926년에 숨을 거두었다. 1936년에 왕정 복고로 왕위에 오른 손자 [[요르요스 2세]]가 망명 중에 사망한 왕족들의 유해를 왕실 묘지에 이장하면서 올가의 유해는 타토이 궁에 안장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